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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9.05 도진기의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 <붉은 집 살인사건>

한창 추리문학 커뮤니티 활동을 열심히 했던 시기가 2003~4년 초반의 시기였는데 당시만 해도 장르문학이 차지하는 위상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7~80년대 출간됐던 동서/자유의 작품들이 여전히 추앙을 받던 시대였고, 구할 수 없어 입맛만 다시고 있던 수많은 작품들과 그 작품들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남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는 시기였고, 어쩌면 그냥 '추리'라는 이름이 붙은 작품들을 골라 읽으면 대부분의 작품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척박한 추리문학의 환경이었다.

 

그랬던 상황이 아마도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셜록홈즈 완전판 전집이 속된 말로 '대박'을 치면서 시장에 작은 충격이 왔고, 이후 까치의 뤼팽 전집 출간, 황금가지에서의 밀리언셀러클럽이 연이어 나오고 그간 조금은 마니악한 취급을 받던 일본 소설들이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라는 쌍두마차에 이끌려 소개가 되면서 지금의 복잡한 상황이 되지 않았나 싶다. 여기서 말하는 '복잡한'의 의미는 출간되는 소설의 제목만 따라가는 것도 벅찬 시기니 국내 독자들을 위해서라면 참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저 이야기는 기회가 있으면 언젠가 따로 하기로 하고, 인생에 추리문학을 접하면서 영미, 일본, 유럽의 작품들은 자주 접하지만 국내 작가가 쓴 작품은 이상하게도 멀리하게 됐다. 수준이 떨어질 것 같다는 선입견도 있었겠고, 읽어야 할 수많은 걸작들을 앞에 두고 거기까지는 손이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상황에서 도진기라는 작가의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는 어느 정도의 명성을 듣고 있었지만 이제야 첫 작품을 읽게 됐다. 탐정 흉내를 내거나, 이상한 패러디 물이 아닌 '본격'을 국내 작가가 쓴다니 놀랍기도 했고, 쓰는 작가분이 현직 판사라는 말을 듣고 '뭐야 엄친아인가'의 생각이 들었었다.

 

작품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등장하는 인물들이 럼이나 위스키 같은 술을 마시지 않고 소주를 마신다는 것, 그다지 와닿지 않는 지명이 아닌 우면산이나 부산, KTX 같은 익숙한 것들이 등장하는 게 무엇보다 반가웠다. 그간 알지도 못하는 지역이 횡단에 몇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언어를 이용한 트릭을 보며 '이게 웬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하는 생각을 들으며 읽었던 걸 생각하면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기도 했다.

 

작품 자체도 그런대로 잘 읽힌 편이었고, 트릭도 개연성 측면에서 할 말이 좀 있긴 하겠지만, 내가 아는 지역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더 잘 와닿고, 신선했다는 생각이다. 작가의 첫 작품이니 당연히 어느 정도 감안은 하고 읽었겠지만, 그래도 정말 '추리소설'이라는 느낌을 주는 작품인 건 확실하고, 다른 작품들도 얼른 따라 잡으며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추리문학작가 협회(큰 의미가 있는 협회인지는 모르겠지만)상을 수상한 작품까지 가는 길이 꽤 기대가 된다.

 

국내 작가의 작품이라 더 엄격한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봤으면서도, 어쩌면 조금은 더 관대한 마음이라는 복잡한 마음으로 읽은 작품이다. 뭐 집어 내면 단점이 없지는 않은 작품이었지만, 그래도 작가가 창조한 작품의 인물과 그 세계를 조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기에 나름 성공적인 시작이라고 하고 싶다.

Posted by Another_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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