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추리 부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미권에서 인기있다고 할 수 있는 장르인 스릴러에 대해서는 어쩌면 '이건 진정한 미스터리가 아니야'라고 스스로에게 외치며 등한시 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해서 리 차일드라는 작가도, 그의 시리즈인 잭 리처 시리즈도 어쩌면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다가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옆좌석에 앉은 사람이 열심히 들여다 보는 책이 있었다.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리며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읽었고, 읽은 후에는 굉장히 만족스런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책이 어땠냐고 묻자, 'Excellent!' 라는 답변이 돌아왔고, 자기도 누가 추천해 줘서 봤지만,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고 다른 시리즈도 볼 거라는 이야기였다. 거기에 책을 덮고 있는 그에게 한 승무원이 'Oh, my favorite!'하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인지 잭 리처 시리즈에 부쩍 관심이 갔고, 국내엔 얼마나 출간이 됐는지 한 번 찾아 보게 됐다. 시리즈는 당연히 1권부터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찾는데, 안타깝게도 Killing Floor는 번역은 되었지만, 절판이었다. 어쩔 수 있나 원서를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와우, 정말 손에서 놓을 수가 없는 책이었다. 그렇게 1권을 읽고 나서는 '나 이제 팬할래'를 외치게 되었고, 그러면서 굳이 시리즈를 순서로 읽어야 하나 싶어 나머지 번역본들을 찾아서 순식간에 읽게 됐다. 다양한 상황에 마주치는 잭 리처와 그만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정말 인상적이었고, 지금은 현재 국내 출간작 중 마지막인 퍼스널을 읽는 중.

 

국내 출간 중에 가장 시리즈 초기작이 어떤 작품인지, 찾기가 너무 힘들어 한번 정리해 봤다. 혹시나 잭 리처 시리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Killing Floor (1997) 국내 제목: 추적자 (절판)
Die Trying (1998) 국내 제목: 탈주자 (절판)
Tripwire (1999)

Running Blind (2000)  
Echo Burning (2001)  
Without Fail (2002)  
Persuader (2003)  
The Enemy (2004)  
One Shot (2005) 국내 제목: 원 샷 (절판)
The Hard Way (2006)   국내 제목: 하드웨이
Bad Luck And Trouble (2007)   국내 제목: 1030
Nothing To Lose (2008)    
Gone Tomorrow (2009)   국내 제목: 사라진 내일
61 Hours (2010)  국내 제목: 61시간
Worth Dying For (2010)  국내 제목: 악의 사슬
The Affair (2011)  국내 제목: 어페어
A Wanted Man (2012)   국내 제목: 원티드 맨
Never Go Back (2013) 국내 제목: 네버 고 백
Personal (2014)  국내 제목: 퍼스널
Make Me (2015)

Night School (2016 예정) 

 

 

언젠가 소감을 한 권씩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든 작품이 잡으면 손을 놓을 수 없을 정도의 긴박감이 일품이고, 대부분 작품이 일정 수준을 이상을 유지하고 있어 놀라웠다. 더 좋았던 건 복선이 꽤나 치밀하게 구성되어 결말이나 반전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는 것에서 반전에 초점을 맞췄던 다른 스릴러들과 차별을 둘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주인공의 매력은 덤.

 

주인공의 변화, 혹은 과거 이야기에 대한 언급 등으로 시리즈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건 악의 사슬 이후부터 조금씩 보이는데, 이때부터 작가가 시리즈를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이끄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아마 다른 초기작들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읽고 있는 퍼스널이 다른 작품에 비해 약간 떨어진 느낌이 드는데, 이는 '익숙해진 독자', '소재가 고갈되어 가는 작가'의 구도상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보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조금 더 시리즈의 매력을 늘려가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작품을 추천하지만, 굳이 한 작품을 꼽으라면 개인적으로는 Worth Dying For '악의 사슬'이 최고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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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추리문학 커뮤니티 활동을 열심히 했던 시기가 2003~4년 초반의 시기였는데 당시만 해도 장르문학이 차지하는 위상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7~80년대 출간됐던 동서/자유의 작품들이 여전히 추앙을 받던 시대였고, 구할 수 없어 입맛만 다시고 있던 수많은 작품들과 그 작품들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남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는 시기였고, 어쩌면 그냥 '추리'라는 이름이 붙은 작품들을 골라 읽으면 대부분의 작품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척박한 추리문학의 환경이었다.

 

그랬던 상황이 아마도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셜록홈즈 완전판 전집이 속된 말로 '대박'을 치면서 시장에 작은 충격이 왔고, 이후 까치의 뤼팽 전집 출간, 황금가지에서의 밀리언셀러클럽이 연이어 나오고 그간 조금은 마니악한 취급을 받던 일본 소설들이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라는 쌍두마차에 이끌려 소개가 되면서 지금의 복잡한 상황이 되지 않았나 싶다. 여기서 말하는 '복잡한'의 의미는 출간되는 소설의 제목만 따라가는 것도 벅찬 시기니 국내 독자들을 위해서라면 참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저 이야기는 기회가 있으면 언젠가 따로 하기로 하고, 인생에 추리문학을 접하면서 영미, 일본, 유럽의 작품들은 자주 접하지만 국내 작가가 쓴 작품은 이상하게도 멀리하게 됐다. 수준이 떨어질 것 같다는 선입견도 있었겠고, 읽어야 할 수많은 걸작들을 앞에 두고 거기까지는 손이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상황에서 도진기라는 작가의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는 어느 정도의 명성을 듣고 있었지만 이제야 첫 작품을 읽게 됐다. 탐정 흉내를 내거나, 이상한 패러디 물이 아닌 '본격'을 국내 작가가 쓴다니 놀랍기도 했고, 쓰는 작가분이 현직 판사라는 말을 듣고 '뭐야 엄친아인가'의 생각이 들었었다.

 

작품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등장하는 인물들이 럼이나 위스키 같은 술을 마시지 않고 소주를 마신다는 것, 그다지 와닿지 않는 지명이 아닌 우면산이나 부산, KTX 같은 익숙한 것들이 등장하는 게 무엇보다 반가웠다. 그간 알지도 못하는 지역이 횡단에 몇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언어를 이용한 트릭을 보며 '이게 웬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하는 생각을 들으며 읽었던 걸 생각하면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기도 했다.

 

작품 자체도 그런대로 잘 읽힌 편이었고, 트릭도 개연성 측면에서 할 말이 좀 있긴 하겠지만, 내가 아는 지역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더 잘 와닿고, 신선했다는 생각이다. 작가의 첫 작품이니 당연히 어느 정도 감안은 하고 읽었겠지만, 그래도 정말 '추리소설'이라는 느낌을 주는 작품인 건 확실하고, 다른 작품들도 얼른 따라 잡으며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추리문학작가 협회(큰 의미가 있는 협회인지는 모르겠지만)상을 수상한 작품까지 가는 길이 꽤 기대가 된다.

 

국내 작가의 작품이라 더 엄격한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봤으면서도, 어쩌면 조금은 더 관대한 마음이라는 복잡한 마음으로 읽은 작품이다. 뭐 집어 내면 단점이 없지는 않은 작품이었지만, 그래도 작가가 창조한 작품의 인물과 그 세계를 조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기에 나름 성공적인 시작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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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의 길이

일상 잡담 2015. 8. 27. 19:10

감상을 쓸 때도 그렇고, 남이 쓴 감상을 읽을 때도 그렇고 적당한 길이란 과연 무엇일까 생각을 한다.

무작정 내가 쓰는 길이가 가장 적당한 것이라며 정신승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지만...

예전엔 길게 쓴다는 게 어쩌면 재능이라고 생각도 했었는데, 요즘은 짧게 쓰는 게 진짜 재능이 아닌가 싶다. 요즘 용어로 스크롤 압박이 심한 길게 쓴 글을 보면 읽고 싶은 생각이 아무래도 줄어드니, 잘 읽히지 않는 글이라면 아무리 명문이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나.

문득 대학시절 교양으로 들었던 문학 수업에서 당시 교수님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대학시절 문학 감상 레포트는 작품을 읽고 다섯 줄로 요약해 오는 것이었다고. 나에게 그런 숙제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난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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